플로우
팸이 일에 빠졌을 때 그녀의 의식 속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그녀의 관심과 일치한다.
플로우는 심리적 엔트로피의 정반대 개념인데, 이런 까닭에 네겐트로피(negentropy)라고 불리기도 한다. 플로우 상태에서 우리는 심리적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. 플로우가 가져다주는 큰 기쁨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암벽 등반가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아주 집중된 주의력이 필요하다.
복합성과 자아의 성장
복합성이란 두 가지 심리적 과정을 거친 결과이다. 이 두 과정을 각각 분화(differentiation)와 통합(integration)이라고 부른다. 분화라는 것은 자신을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로 여기며 나아가려는 움직임으로,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분리하려고 하는 경향을 말한다. 한편 통합이라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로, 다른 사람이나 다른 아이디어와 합하려는 경향을 말한다. 복합적 자아란 이 두 가지 경향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자아를 일컫는다.
오직 한 개인이 자신의 심리적 에너지를 분화와 통합이라는 이 두 가지 과정을 균등하게 분배할 때, 또한 그 결과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순응적이지 않게 될 때 그 사람의 자아는 복합성을 갖추게 된다.
우리는 플로우를 경험함으로써 복합적인 자아를 갖는다. 역설적이게도 어떤 외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를 즐길 때 우리 삶이 향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.
플로우가 중요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. 첫 번째는 플로우가 현재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준다는 것이요, 두 번째는 우리 개개인의 자신감을 향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이다.
회고
연차가 쌓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.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? 이 일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? 아직 내 일을 사랑하는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, 분명 좋아한다. 매력적인 일이다. 언젠가 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, 그 속에서 플로우를 경험하고 싶다.
주변에 유능하고 착한 동료들이 많다. 만약 누구에게나 행운이 한 번씩 찾아온다면, 내게 찾아온 행운 중 하나는 바로 지금의 동료들일 것이다. 그들을 보며 배우고 본받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. 하지만 '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'는 말처럼, 때로는 벅차게 느껴지기도 한다. 아이러니하게도, 그들을 따라가려다 보니 오히려 나 자신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.
이 책에서 '복합성'이라는 개념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. 지금의 나는 '분화'와 '통합'의 과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인 것 같다. 이를 극복하기 위해, 플로우를 경험하며 복합적인 자아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. 그렇다면, 플로우는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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